아는 척하기 딱 좋은

1979년부터 2025년까지, 명작 보드게임 23선

독일 '올해의 게임상(Spiel des Jahres)' 수상작과, 상은 못 받았지만 완성도로 유명한 게임까지 연대순으로 정리했다. 상세 룰 대신 어떤 게임인지, 왜 재밌는지만 간단히.

1979년부터 2025년까지, 명작 보드게임 23선

보드게임 카페에 가면 신작 사이에 꼭 낀 채로 몇 년째 안 사라지는 게임들이 있다. 트렌드는 돌고 돌지만 명작은 안 죽는다는 걸 증명하듯, 독일 ‘올해의 게임상(Spiel des Jahres, 이하 SdJ)’ 수상작 중에는 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첫 판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게임이 많다. 1979년 첫 수상작부터 2025년 최신 수상작까지 함께 정리했다.

플레이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기보다, “이런 게임이구나” 정도만 감 잡을 수 있게 연대순으로 짧게 소개한다.

한눈에 보기

연도 게임 수상
1979 토끼와 거북이 SdJ 1회 수상작
1983 스코틀랜드 야드 SdJ 수상
1985 셜록 홈즈 컨설팅 디텍티브 SdJ 수상
1995 카탄의 개척자들 SdJ 수상
1996 엘 그란데 SdJ 수상
2001 카르카손 SdJ 수상
2003 알함브라 SdJ 수상
2004 티켓 투 라이드 SdJ 수상
2008 아그리콜라 SdJ 특별상(중량급)
2009 도미니언 SdJ 수상
2010 딕싯 SdJ 수상
2011 세븐 원더스 Kennerspiel(전문가 게임상) 수상
2018 아주르 SdJ 수상
2019 윙스팬 Kennerspiel 수상
2020 픽쳐스 SdJ 수상
2021 마이크로 매크로: 크라임 시티 SdJ 수상
2022 카스카디아 SdJ 수상
2023 도르프로만틱 SdJ 수상
2024 스카이 팀 SdJ 수상
2025 밤 버스터즈 SdJ 수상

토끼와 거북이 (1979)

SdJ 1회 수상작. 앞서갈수록 오히려 불리해지는 역설적인 규칙이 특징이라, 지금 봐도 “이런 아이디어를 그때 벌써?” 싶은 게임이다. 순위 다툼 게임의 원형 같은 작품.

스코틀랜드 야드 (1983)

한 명이 몰래 도망 다니고 나머지가 힘을 합쳐 추적하는 협력 추격전. 런던 지도 위에서 벌어지는 숨바꼭질의 원조 격이라, 이후 나온 수많은 “정체를 숨긴 한 명 vs 다수” 게임들이 이 게임의 자손이라 봐도 된다.

셜록 홈즈 컨설팅 디텍티브 (1985)

주사위나 말판 이동 없이, 신문·지도·인명록 같은 자료를 뒤져가며 사건을 추리하는 협동 게임. 승패보다 “얼마나 적은 단서로 사건을 풀었나”가 중요해서,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확장판이 계속 나올 만큼 꾸준히 사랑받는다.

카탄의 개척자들 (1995)

이른바 ‘유로게임’ 붐을 연 게임. 주사위로 자원을 얻고, 협상하고, 배신하고, 길을 놓고 마을을 세운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겠지만, 보드게임 입문서 첫 페이지에 이 게임이 빠지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엘 그란데 (1996)

스페인 지역을 놓고 벌이는 세력 다툼 게임. 겉보기엔 단순해 보여도 수 싸움이 상당히 깊어서, 지금도 헤비 게이머들 사이에서 “지역 지배 게임의 교과서”로 통한다.

카르카손 (2001)

타일을 하나씩 놓아 성과 길, 들판을 만들어가는 게임. 규칙이 단순해서 아이와도 무리 없이 할 수 있는데, 그 단순함 안에 은근한 수 싸움이 숨어 있어 20년 넘게 스테디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알함브라 (2003)

경매로 얻은 타일로 나만의 궁전을 짓는 게임. 자원 관리와 배치 전략이 절묘하게 섞여 있어, 카르카손과 함께 ’타일 놓기 장르’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티켓 투 라이드 (2004)

기차 노선 카드를 모아 지도 위에 철도를 잇는 게임. 규칙은 정말 단순한데 이상하게 몇 판을 해도 안 질린다. 처음 보드게임을 접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기 가장 무난한 게임 중 하나.

아그리콜라 (2008)

농장을 경영하며 일꾼을 배치해 자원을 관리하는 ‘워커플레이스먼트’ 장르의 정점. 룰이 결코 가볍지 않아서 SdJ 본상 대신 중량급 게임을 위한 특별상을 받았는데, 지금도 헤비 게이머들에게는 필수 코스로 꼽힌다.

도미니언 (2009)

게임을 진행하며 자신의 카드 덱을 직접 만들어가는 ‘덱빌딩’ 장르를 처음 만든 게임. 이후 나온 모든 덱빌딩 게임이 이 게임에서 파생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딕싯 (2010)

그림 카드 한 장을 보고 떠오르는 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 말에 어울리는 카드를 골라 섞는 파티 게임. 나이나 게임 경험과 상관없이 즐길 수 있어서 가족 모임이나 첫 보드게임 모임에 특히 잘 맞는다.

세븐 원더스 (2011)

카드를 골라 쓰고 옆 사람에게 넘기는 ‘드래프트’ 방식의 대표작. 문명을 발전시키는 테마에 러닝타임까지 짧아서, 여러 명이 모였을 때 부담 없이 돌리기 좋다.

아주르 (2018)

타일을 모아 나만의 패턴을 완성하는 게임. 규칙이 직관적인 데다 컴포넌트가 예뻐서, 전략성과 별개로 “일단 예쁘다”는 이유만으로도 아이들이 좋아한다.

윙스팬 (2019)

새를 모아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엔진 빌딩’ 게임. 일러스트 퀄리티가 워낙 좋아서 플레이용이자 소장용으로도 손색없다는 평이 많다.

픽쳐스 (2020)

사진 카드 한 장을 다른 카드·색연필·점토 같은 엉뚱한 도구로 표현하면 나머지가 맞추는 파티 게임. 라운드마다 표현 수단이 바뀌어서, 몇 판을 해도 매번 다른 방식으로 머리를 써야 한다.

마이크로 매크로: 크라임 시티 (2021)

보드도 말도 없이, 도시 전체를 그린 거대한 일러스트 지도 한 장 위에서 숨은 단서를 찾아 사건을 추리하는 게임. 종이와 돋보기만으로 이 정도 몰입감을 낼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

카스카디아 (2022)

타일과 동물 토큰을 짝지어 나만의 자연 서식지를 완성해가는 게임. 규칙은 간단한데 퍼즐 조각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손맛이 좋아서, 혼자 해도 재밌다는 평이 많다.

도르프로만틱 (2023)

같은 이름의 비디오게임을 보드게임으로 옮긴 작품. 마을 타일을 이어붙여 풍경을 완성하는 과정 자체가 목적이라, 경쟁보다 힐링에 가까운 분위기의 게임을 찾는다면 잘 맞는다.

스카이 팀 (2024)

단 두 명이 조종사와 부기장이 되어 비행기를 무사히 착륙시키는 협동 게임. 대화 없이 주사위를 상대에게 밀어 신호만 주고받는 방식이라, 짧은 러닝타임에도 긴장감이 상당하다.

밤 버스터즈 (2025)

팀원끼리 자기 손에 든 카드 정보를 정해진 규칙 안에서만 아주 조금씩 흘리며 폭탄을 해체하는 협동 추리 게임. “말하지 않고 전달하기”의 재미를 끝까지 밀어붙인 최신 수작이다.

번외: 상은 못 받았지만 완성도로 유명한 게임들

SdJ는 가족 단위로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우선하는 상이라, 무겁고 복잡한 게임은 애초에 후보에도 잘 오르지 못한다. 그래서 오히려 상은 못 받았는데도 “역대 최고의 유로게임”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 게임들이 있다.

연도 게임 아쉬운 점
2002 푸에르토리코 SdJ 낙선, 대신 BGG 랭킹 1위를 몇 년간 지킴
2005 트와일라잇 스트러글 전략게임 특성상 SdJ 후보에 오르지 못함, 이후 BGG 랭킹 1위 등극
2016 테라포밍 마스 Kennerspiel des Jahres 2017 후보였지만 EXIT: The Game에 밀림

푸에르토리코는 2002년 SdJ에서 2위에 그쳤지만(그해 수상작은 빌라 팔레티), 이후 한동안 BGG 전체 랭킹 1위 자리를 지켰을 만큼 완성도를 인정받은 게임이다. 자원 관리와 일꾼 배치를 결합한 유로게임의 정석으로, 지금 나온 수많은 게임들이 이 게임의 시스템을 참고했다.

트와일라잇 스트러글은 냉전 시대 미소 대립을 다룬 2인 전략게임이라 SdJ 성격과는 애초에 안 맞았지만, 카드 하나하나에 담긴 긴장감 덕분에 한동안 BGG 랭킹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마니아층의 지지가 두텁다.

테라포밍 마스는 화성을 개척하며 자원을 쌓아가는 엔진빌딩 게임. 2017년 Kennerspiel des Jahres 후보에 올랐지만 그해는 방탈출 게임 열풍을 몰고 온 EXIT: The Game에 자리를 내줬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BGG 상위권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는 스테디셀러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목록이다. 40년 넘은 고전부터 작년에 나온 최신작, 그리고 상을 못 받고도 마니아들 사이에서 전설이 된 게임까지 —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시대를 가리지 않고 여전히 첫 판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검증이 끝났다는 뜻이니, 처음 시작한다면 이 안에서 골라도 실패할 확률은 낮다.